올해는 책을 좀 많이 읽어보려고 여러시도를 했다. 2021년이 시작하면서 여러권의 책을 샀지만 6월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이번에 읽은책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는데에만 많은 시간을 허비 했다. 그럼애도 꾸역꾸역 읽어가면서 간신히 후기를 남겨 본다.
평등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평등(平等)은 인간의 존엄, 권리, 인격, 가치, 행복의 추구 등에 있어 차별이 없이 같은 상태를 말한다. (위키백과) 차별이 없이 같은 상태라고 정의를 내린 이 평등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더 깊이 나아가서 이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소재는 기회의 평등의 한계와 문제점 이었다. 어떠한것이 평등한가? 그리고 인재를 선발하는데 있어서 어떤 방식의 선발이 평등한 선발인가? 이를 객관화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능력에 대한 수치를 알아야 하는데 이렇게 나온 개념이 능력주의 이다.
능력주의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위해서는 먼저 차별의 뿌리가 뽑혀야 한다. 1991년 조지 H.W부시는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해법으로 다음과 같은 대안을 발표 했다. “해답은 교육입니다.” 이 주장으로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학 학위가 없는 노동자는 그럴듯한 보수를 주는 직장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뭘 얻을 수 있느냐는 우리가 뭘 배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라는 말을 임기 동안 이런 표현을 30번 이상 했었다. 그러나 이 능력주의에 대한 한계가 뚜렷하게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는, 각각이 갖고 있는 집안의 배경 뿐만 아니라 재능 자체에서도 평등하지 않게끔 태어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의 한계
예전부터 ‘능력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사람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이라는 사람이다. 1958년 그는 ’능력주의의 등장’ 이라는 책을 썼는데, 바이클 영이 바라보는 능력주의란 결코 이상이 아닌 디스토피아 였다. 마이클 영이 주로 이야기 하는 한계점이란 성공의 모순인데, 능력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상류층에게 더이상의 자기 의심이나 자기 비판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능력에 따라 계급이 분류된 사회에서는 상류층의 성공은 단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며, 노력에 대한 대가로 여기기 쉽게 된다. 이는 상류층과 하류층과의 대화의 단절속도를 더 가속화 하게 되는데, 이를 가르는 세가지의 단어가 바로 지성과, 교육, 그리고 노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과연 재능은 평등한가? 첫 번째로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내가 재능을 갖게 된 것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행운의 결과 이다. 능력주의는 내가 부잡집에 태어났다고 해서 혜택을 누릴 당연한 자격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 다른 종류의 행운, 가령 특별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거나 하는 것은 다르게 보아야 할까? 복권의 당첨은 온전히 행운에 의한 결과인데, 이를 내 능력의 성과라고 주장할수 있을까? 두 번째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나의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인가의 여부이다. 4천억원의 연봉을 받는 르브론 제임스를 예로 들어보자. 타고난 재능과 엄청난 노력으로 37세의 나이에도 아직도 NBA의 상위 클래스의 선수로 활약 하고 있다. 여기서 르브론 재임으의 재능 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력에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가 각광을 받는 사회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인재 선별기 대학
이렇게 능력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를 나열했으나, 이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 직무 능력보다는 연줄이나 갖가지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건가? 특히 지금보다 더 과거에는 하버드, 예일, 프리스턴 등의 대학교에서는 능력보다는 집안의 능력으로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교에서 매일 파티를 벌인 사람들이 10년 후에는 주요 로펌, 울스트리트 은행, 외교부, 연구병원, 대학교수진을 장악하는 사회 였다고 한다.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인물이 있다. 하버드대의 총장이자 제2차 세계대전중 홯학자로 일하던 코넌트는 미국 사회 전체적으로 세습 상류층이 득세하는 현상을 못마땅해 했다. 코넌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 있다. 순전히 학생의 능력으로만 선별 하겠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게 바로 지금의 SAT이다. 하버드를 온전히 능력주의적 기관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코넌트의 시도는 미국 사회 전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점이 생기는데, SAT점수가 어느새 집안의 부와 연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득 사다리의 단이 하나씩 높아질수록, SAT 평균 점수가 올라갔다.
일의 존엄성
앞서 말한 계급을 허물기 위해 능력주의의 개념이 나왔으나, 자본주의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능력주의 또한 자본에 영향을 많이 받아가면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능력주의 시대는 노동자들에게 악랄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의 존업성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시험 점수를 잘 따고 대입 시험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브레인’을 칭송하면서, 인재 선별기는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들은 시궁창에 빠트렸다. 그러나, 다수의 노동자들이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지금 일의 존엄에 대한 보다 견실한 생각이 주류 정치 논의로 파고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조짐은 아직은 없다. 이 이유로는 경제 성장이 최고라는 믿음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과: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종종 기회의 평등의 유일 대안은 냉혹하고 업압적인 결과의 평등이라고 여겨지지만,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업한 삶ㅎ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다. 조건의 평등의 뛰어난 설명중 하나를 소개 해보자. 대공황 중에 출간된 ’평등’ 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경제사학자이며 사회비평가인 토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의 행복은 각자가 자유롭게 새로운 안락과 명성의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존업과 문화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함도 요구한다. 후자는 반드시 출세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 특히 맨 마지막에 반드시 출세할 것을 요하지 않는다가 인상 깊은데, 무한 경쟁체제에서 노오오력이라는 단어가 많은 것들을 조롱하는데 사용하는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것 같다.